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이맘때 조용히 다가오는 명절이 있으니 바로 단오날이다. 설날이나 추석만큼은 아니지만, 단오 또한 수천 년을 이어온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날이다. 특히 단오날 먹는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계절의 변화, 건강에 대한 염원, 지역 전통이 어우러진 소중한 자산이다. 이번 글에서는 단오날 먹는 음식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더 깊이 알아보자.
단오날은 어떤 날일까?
단오는 음력 5월 5일, 2025년 단옷날은 양력으로 5월 31일 토요일이다. 이 시기는 여름이 시작되는 초입으로, 예로부터 양기(陽氣)가 가장 강해지는 날로 여겨졌다. '단오(端午)'는 ‘처음 단(端)’과 ‘다섯 오(午)’가 합쳐진 말로, 한 해의 ‘첫 다섯째 날’이라는 의미다. ‘천중절’, ‘수릿날’, ‘중오절’ 등으로도 불렸으며, 중국의 단오절과 시기가 같지만 우리나라는 고유한 풍습을 간직해 왔다.
단오는 농경 사회에서 한 해 농사의 안녕을 기원하고 여름철 질병이나 재앙을 예방하고자 마련된 명절이다. 이 날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쑥과 익모초를 채취하며, 그네뛰기와 씨름 같은 놀이를 통해 액운을 날리고 건강을 기원하는 문화가 전해진다. 단옷날 먹는 음식 역시 이런 전통과 맞물려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단오날 먹는 음식이 특별한 이유
단오날 먹는 음식은 한 해 중 기운이 가장 강하다는 시기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른 더위에 대비하고 기력을 보충하는 동시에, 잡귀나 나쁜 기운을 쫓는 상징적인 의미까지 담겨 있다. 재료는 주로 수리취, 쑥, 앵두, 약초 등 5월 말에서 6월 초에 제철을 맞는 것들이며, 이 재료들이 가진 약리적 효능도 함께 고려되었다. 단오날 먹는 음식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한 준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수리취떡: 단오 음식의 대표 주자
수리취떡은 단오날 먹는 음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음식이다. 멥쌀가루에 수리취를 섞어 만든 떡으로, 쫀득한 식감과 함께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수리취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고 피를 맑게 해주는 약초로, 단오 즈음에 가장 맛과 향이 짙어진다. 떡을 만들 땐 수리취 잎을 곱게 다져 넣고, 잎이나 참잎으로 떡을 싸서 찌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단오날 수리취떡을 먹으면 액운을 막고 여름 내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쑥을 활용한 쑥떡도 함께 만들어 먹으며, ‘떡을 먹고 건강을 다진다’는 상징성이 강하다. 지금은 쉽게 접하기 어렵지만, 일부 농촌이나 강릉 단오제 같은 행사에서는 여전히 수리취떡을 만들어 나눠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앵두화채: 여름 입맛 돋우는 새콤한 간식
단오 전후로 제철을 맞는 앵두는 예로부터 중요한 명절 과일이었다. 앵두화채는 앵두를 꿀물이나 설탕물에 담가 시원하게 마시는 전통 음료로, 새콤달콤한 맛과 상큼한 색감 덕분에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단오날 먹는 음식 중 보기에도 화사하고 갈증 해소에 탁월한 별미다.
최근에는 앵두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체리, 자두 등으로 대체하거나, 얼음과 탄산수를 더해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앵두화채는 그 자체로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여름을 앞두고 몸을 식히며 기운을 북돋는 역할도 한다.
제호탕: 전통 한방 청량음료
더위에 대비하기 위한 대표 음료로는 제호탕이 있다. 오매(매실을 말린 것), 백단향, 감초, 초과, 황백 등 다양한 약재로 우려낸 제호탕은 궁중에서 왕족이 즐기던 여름 음료이자, 일반 백성들도 약국에서 처방받아 마시던 건강식이었다. 위장을 보호하고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했으며,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 초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효과가 있다.
제호탕은 현재도 일부 한약방이나 전통시장에 가면 구매할 수 있으며, 약간 쌉싸름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단옷날 먹는 음식 중에서도 ‘의학적 의미’가 가장 강한 음료라 할 수 있다.
쑥 요리와 청포묵: 해독과 보양의 조합
단오 무렵엔 약쑥이 풍성하게 자라는 시기다. 쑥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약초로, 단오엔 떡 외에도 쑥국, 쑥부침개, 쑥전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었다. 특히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효능 덕분에 여성 건강에 좋다고 여겨져 여성들이 즐겨 섭취했다.
청포묵은 녹두를 갈아 굳힌 묵으로, 단오를 포함해 여름 내내 즐기는 대표 시원한 음식이다. 기름 없이 담백하게 먹을 수 있고, 양념간장과 오이채, 김가루를 곁들이면 여름철 입맛이 살아난다. 지역에 따라 도토리묵으로 대체하기도 하며, 이들 모두 해독 작용이 뛰어나 몸속 노폐물 제거에 효과적이라 여겨졌다.
면요리와 밀국수
단오 즈음은 밀의 수확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밀국수나 냉면 같은 면요리도 단옷날 먹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냉면은 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음식이라 각 가정에서도 단오상을 차릴 때 종종 포함되었다. 간장 국물에 오이, 김가루, 계란 등을 얹어 시원하게 즐기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이는 여름철 떨어지기 쉬운 입맛을 되살려주는 효과가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단오 음식 문화
단오날 먹는 음식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경상도에선 밀국수와 함께 약쑥을 넣은 부침개가 일반적이며, 전라도에선 고추장을 푼 비빔청국장과 다양한 제철 나물로 상차림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와 경기 북부 지역에선 수리취떡이 가장 대표적이다.
강릉 단오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 단오제는 단오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행사다. 매년 음력 5월 초에 열리는 이 축제에선 전통 제례부터 줄다리기, 신앙행렬, 굿, 민속놀이, 그리고 단오날 먹는 음식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체험존까지 운영된다. 수리취떡 만들기, 제호탕 시음, 앵두화채 체험 등 다양한 식음 콘텐츠가 준비돼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적합하다. 특히 수리취떡은 강릉 단오제의 상징적인 먹거리로 자리 잡아 있으며,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전통 떡을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오늘날 단오가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단옷날 먹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과 함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요즘엔 마트나 온라인 몰에서도 수리취떡이나 쑥떡, 제호탕 등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집에서도 간편하게 앵두화채를 만들어볼 수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으로 단오 문화를 지켜가는 건 어떨까.
올해 단옷날엔, 전통 음식을 한 상 차려보자.
단오날 먹는 음식은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약초와 계절 식재료로 만든 이 음식들은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이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단옷날을 기억하고, 음식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올해 단오에는 수리취떡 한 조각, 앵두화채 한 잔으로 여름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해 보자.